찌르르 blog

 다 읽는 데에 4년이 걸렸다.

 

 이 책은 대학교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왔다. 1Q84, 해변의 카프카, 노르웨이의 숲 등을 읽고 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던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얼른 집어 들었다. 좋았다. 좋았는데 왠지 모르게 끝까지 읽을 엄두가 안 났다. 이것보다 훨씬 두꺼운 책도 열심히 읽었으면서. 이 책은 뭔가 마음에 턱 걸린 것처럼 읽을 수가 없어서 내려놓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문득 하루키 책을 읽고 싶은 날이 있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다 말았었다는 게 기억나서 전자책을 구매했다. 재미있게 읽다가 몇 문장이 기분 나빠서 읽기를 멈췄다. 어린 여학생이 자기 가슴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었는데 되게 불쾌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한 번 읽은 책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어버리는데 신기하게 이 책의 내용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가끔 생각났다.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며칠 전에 다시 생각이 나서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불쾌함을 까먹고 나서 보니 역시나 재미있었다. 왜 재미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서사가 재미있나? 등장인물이 마음에 드나? 무엇 하나 콕 찝어낼 수가 없었다. 아마 하루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하루키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아니 사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보다는 내가 뭘 느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들이 현실의 내게도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본 적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신을 믿지 않으면서, 소설 두 권으로 이런 비과학적인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별 수 없다. 하루키가 소설을 잘 쓴 탓이다. 

 

 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야만 했을까. 소설가들은 왜 긴 이야기를 쓰는 걸까. 말하고 싶은 핵심만 적으면 사실 한 페이지로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긴 소설을 쓰는 이유를 헤아려봤다. 짧은 문장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닿을 수 없어서 긴 이야기를 마련하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야만 독자의 의식이 빨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라서. 이 책을 읽은 후에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 자기 능력으로는 몇 줄의 글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정리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어졌다. 등장인물과 사건을 엮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내는 것. 즐거울까? 괴로울까? 몇 줄 써봤는데 쉽지 않다.

 

 마음에 찌르르 다가오는 문장도 몇 줄 건졌다. 그리고 찌르르를 시작하게 됐다. 귀여운 그림과 함께 인상 깊은 문장을 썼다. 신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다. 이제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려고 한다. 그전에 블로그에 간단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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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상화 화가인 주인공. 어느 날 아내가 이혼을 요구한다. 따지지 않고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다가 친구인 아마다 마사히코의 아버지(아마다 마사히코. 화가) 댁에서 머물게 된다. 그 집 다락방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발견한다. 

 이웃에는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진 멘시키가 살고 있다. 그는 자기의 딸일지도 모르는 마리에를 멀리서 바라본다. 

 종소리를 듣고 멘시키와 함께 집 뒤편에 있는 굴을 파낸다. 그 뒤로 있던 이데아(기사단장)이 가끔 나타난다. 

 주인공은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리고, 마리에는 사라진다. 주인공은 마리에를 구하기 위해 기사단장을 죽이고 다른 세계(같은 것)에 들어간다. 빠져나오니 현실세계의 굴 안이다. 

 마리에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주인공은 아내와 재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