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르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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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나무
자고 있는 상분이의 가슴팍에 누워서 가만히 있으면 곧 '뜍, 뜍' 하고 가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밤에는 자다가 새벽 두 시에 깼는데, 이게 내 가슴 소리인지 상분이 가슴 소리인지 헷갈려서 상분이 가슴에 손을 올려서 박동을 확인했다. 손에서 가슴이 불끈, 하면 0.01초 정도 뒤에 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분이 가슴 소리가 맞구나. 발로 차낸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조금 토닥여주고, 이를 갈면 턱을 잡아주고, 귀에 꽂고 있던 에어팟을 빼주고 잠들었다. 그런데 상분이는 내가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해서 나한테 들려줬다. 내 코 고는 소리 시끄러워서 에어팟 끼고 잤다고. 이런 배은망덕한...
10시 반에 시작한 회의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회의록을 정리하고 밥을 먹으러 거실로 나갔다. 원래는 김밥이나 순두부찌개를 먹으려다가 집에 있던 볶음밥을 싹 먹어치웠다. 일인분 좀 넘는 양을 영상을 보며 천천히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영상을 보며 점심을 먹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동안은 사무실에서 혼자 책 읽으면서 먹거나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서 먹었는데 재택근무를 시작하니 점심시간이 훨씬 더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어제부터 보기 시작한 알로하융님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영상을 봤는데 부럽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불끈거렸다. 성실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밥을 먹고 바로 앉아서 일하면 갑갑하기도 하고 속도 더부룩할 것 같아서 산책을 나갔다. 날이 흐리고..
나를 빼고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게 불안했고, 출퇴근하는 세 시간이 아까웠다. 일보다는 퇴근 시간 지옥철에서 흔들거리고 다른 사람의 어깨에 밀쳐지는 시간이 날 너무 지치게 했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입사한 지 이제 세 달 차라 좀 위험한 도전이긴 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작업이 정해져 있고 다른 사람과 굳이 소통해야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용기 내어 던져보았다. 작은 회사이고 아직 체계도 없어서 안 된다고 할까 봐 걱정했지만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휴. 다행이다. 오늘은 재택근무 첫 날이다. 남는 방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세팅했다. 밀렸던 독후감 두 편을 쓰니 한 시간 반이 후다닥 지나갔다. 이제 업무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업무 시간에는 업무에만 빡..
글 쓰는 것보다 글쓰기 책을 읽는 게 훨씬 재밌다. 나만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고, 자신만의 글쓰기 팁은 무엇인지가 너무 너무 너무 궁금하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남들의 글쓰기를 알고 싶은 충동에 휩쓸린 나는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뭐 천재들은 처음부터 잘 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고 시 같은 걸 끄적였기 때문에 10년 전의 글도 남아있는데, 지금 다시 보면 토가 나온다. 이 글도 몇 년 후에는 미래의 나에게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겠다. 쓰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몇 가지 팁과 함께 저자가 ..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소설을 써보고 싶어진 나는 잠꼬대하는 연인이 등장하는 소설을 두 페이지 정도 썼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내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숙고 끝에 써낸 문장이 마음에 쏙 드는 순간엔 기쁜데 나머지 시간들은 좀 괴로웠다. 내가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지 나도 잘 모르겠고. 글이 일기 쓰듯 술술 써지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재고 따지면서 쓰다 보니 진도는 영 안 나가고. 끙끙대면서 이 책을 펼쳤다. 하루키가 처음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야구를 보다가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기 시작했다고. 원래는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었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기도 전인데 왜 알고 있나 생각해봤더니, 다른 하루키의 책 날개에서 본 것 같다. 그 이상을 더..
다 읽는 데에 4년이 걸렸다. 이 책은 대학교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왔다. 1Q84, 해변의 카프카, 노르웨이의 숲 등을 읽고 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던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얼른 집어 들었다. 좋았다. 좋았는데 왠지 모르게 끝까지 읽을 엄두가 안 났다. 이것보다 훨씬 두꺼운 책도 열심히 읽었으면서. 이 책은 뭔가 마음에 턱 걸린 것처럼 읽을 수가 없어서 내려놓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문득 하루키 책을 읽고 싶은 날이 있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다 말았었다는 게 기억나서 전자책을 구매했다. 재미있게 읽다가 몇 문장이 기분 나빠서 읽기를 멈췄다. 어린 여학생이 자기 가슴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었는데 되게 불쾌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한 번 읽은 책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어버리는데 신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불멍을 때려봤다. 마트에 마른 장작을 판다는 것도, 그 장작에는 잔가시가 엄청나게 많아서 손을 대면 대는 족족 따갑다는 것도, 장작을 격자모양으로 놓으면 불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잘 붙어서 예쁜 모양(🔥)으로 타오른다는 것도, 불 앞에서는 지나간 일이나 앞으로 있을 일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도, 불 옆에 함께 앉아 시간을 보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것도, 불길이 줄어들었을 때 새 장작을 넣으면 더 확실하게 줄어든다는 것도, 하지만 꺼지지 않고 착실히 새로운 모양으로 타오른다는 것도, 아이유의 밤편지는 불멍하며 들으면 오백만배정도 더 좋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다. 튀어오른 불씨는 어디로 가길래 그렇게도 갑작스럽게 사라지는지, 불을 보기 전과..